"나 분명히 조금 먹은 것 같은데 왜 자꾸 살이 찌는 거지?"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고민입니다. 우리는 보통 '먹는 양'을 줄이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한국인에게 식사 시간 10분은 국룰(?)입니다. "빨리빨리" 문화는 식탁 위에서도 유효하죠. 바쁜 점심시간, 우리는 김밥 한 줄이나 햄버거 세트를 5분 만에 마시듯 먹어 치웁니다. 아무래도 급속도로 발전해 온 산업화로 인한 환경 탓이겠죠.
하지만 PSSS 2023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습관은 단순히 소화가 안 되는 문제를 넘어, 우리 뇌의 포만감 시스템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행위입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식사 속도(빠름/느림)'와 '에너지 밀도(고칼로리/저칼로리)'라는 두 가지 조건을 조합하여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에너지 밀도가 높은 음식'을 '빠르게' 먹었을 때, 참가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칼로리를 섭취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자율적인 에너지 섭취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1. 최악의 조합: '고밀도' 음식을 '초고속'으로 먹을 때
먼저 용어부터 정리해 봅시다.
- 에너지 밀도(Energy Density): 같은 무게일 때 칼로리가 얼마나 높은가입니다. (예: 오이 100g은 저밀도, 초콜릿 100g은 고밀도)
- 식사 속도(Eating Rate): 분당 섭취하는 그램(g) 수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고밀도 + 빠른 속도]의 조합은 다이어트의 '재앙'입니다. 우리 뇌가 "아, 배부르다"라고 느끼려면 렙틴 같은 호르몬이 분비될 시간이 필요한데(최소 15~20분), 고밀도 음식을 빠르게 먹으면 뇌가 신호를 받기도 전에 이미 하루치 칼로리가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데, 주유기 센서가 작동하기도 전에 기름이 넘쳐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넘친 기름은 고스란히 내 뱃살(지방)이 됩니다.
2. 에너지 밀도의 함정: 부피에 속지 마라
우리는 종종 "배가 안 차서 더 먹었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위장의 물리적 팽창'입니다.
- 저밀도 음식(채소, 국물 요리 등): 수분과 식이섬유가 많아 부피가 큽니다. 조금만 먹어도 위가 늘어나 뇌에 "그만 먹어" 신호를 보냅니다.
- 고밀도 음식(피자, 과자, 튀김): 수분이 없고 지방이 많아 부피가 작습니다. 위장이 늘어나는 느낌이 들 때쯤이면 이미 칼로리는 초과 상태입니다.
이 논문은 에너지 밀도가 높은 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속도를 늦추는 전략'이 동반되어야만 과식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3. 5분 컷 샌드위치 vs 30분 컷 쌈밥
저의 부끄러운 과거 식습관을 고백합니다. 회사 다닐 때 저는 늘 시간에 쫓겨 편의점 샌드위치나 김밥을 사서 책상에서 5분 만에 해치웠습니다.
- 메뉴: 샌드위치 (고밀도: 빵, 마요네즈, 햄)
- 속도: 5분 (초고속)
- 결과: 먹고 나서도 허전해서 믹스커피와 과자를 또 먹음. 오후 내내 속이 더부룩하고 살은 계속 찜.
반면, 주말에 가족들과 '쌈밥'을 먹을 때는 달랐습니다.
- 메뉴: 쌈 채소 가득, 밥, 된장 (저밀도: 수분 가득한 채소)
- 속도: 쌈을 싸느라 손을 써야 하고, 꼭꼭 씹어야 해서 30분 이상 소요 (느림)
- 결과: 밥을 반 공기만 먹어도 배가 터질 듯 불렀고, 저녁까지 간식 생각이 전혀 안 남.
이 경험은 연구 결과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제가 살이 쪘던 이유는 제가 많이 먹는 대식가여서가 아니라, '고밀도 음식을 빨리 먹는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4. 연구 결과를 일상에 적용하는 '느리고 묽게' 전략 3가지
PSSS 2023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3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① 식탁 위에 '물'이 많은 음식을 올려라 (Volumetrics Diet)
에너지 밀도를 낮추는 가장 쉬운 방법은 '수분'입니다.
- 식사 전에 샐러드나 맑은 국(건더기 위주)을 먼저 드세요. 위장의 공간을 저밀도 음식으로 먼저 채워두면, 이후에 고밀도 음식이 들어갈 공간이 줄어듭니다. 이를 '볼류메트릭스(Volumetrics) 식단'이라고 합니다.
② '씹기 힘든' 음식을 선택하라
빨리 먹고 싶어도 못 먹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 부드러운 흰 빵 대신 거친 통곡물 빵, 푹 익힌 야채 대신 아삭한 생채소, 갈아 만든 주스 대신 통과일을 드세요. 씹는 횟수가 늘어나면 식사 속도는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뇌는 포만감을 느낄 시간을 벌게 됩니다.
③ 숟가락을 내려놓는 '20분의 법칙'
고밀도 음식(치킨, 피자)을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평생 참을 수는 없으니까요. 이때는 '속도'만 제어해도 승산이 있습니다.
- 한 입 먹고 숟가락(혹은 포크)을 식탁에 완전히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입안의 음식이 다 사라질 때까지 다시 집지 마세요.
- 식사 시간을 최소 20분 이상으로 늘리세요. 20분은 뇌가 "배부르다"는 신호를 보내는 골든타임입니다.
5. 마치며: 다이어트는 '양'이 아니라 '속도와 밀도'의 싸움
식사 속도와 에너지 밀도의 상호작용을 연구한 이 논문은 우리에게 "무조건 굶는 것이 답이 아니다"라는 희망을 줍니다.
배고픔을 참으며 적게 먹는 다이어트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수분이 많은 음식(저밀도)을 천천히(저속) 먹어 배를 불리는 것. 그것이 과학이 증명한 가장 똑똑하고 지속 가능한 체중 관리 비법입니다.
오늘 점심, 여러분의 식탁에는 무엇이 놓여 있나요? 그리고 여러분은 그것을 몇 분 만에 드실 생각인가요? 그 작은 차이가 내일의 몸매를 결정합니다.
참고 문헌: The combined impact of eating rate and energy density on ad libitum energy intake. Presented at the 15th Pangborn Sensory Science Symposium (PSSS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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